어머니의 '웰컴 투 동막골'
저녁에 TV를 보다가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 꽃을 피웠다. SBS '프라하의 봄' 시작할 때 쯤이었다. 그 전에 무슨 프로를 보고 있었더라?
아주 가끔씩이지만 난 사명감에 사로잡혀 어머니에게 먼저 이야기를 걸 때도 있다. 내가 객지에 오래 살기도 했고 (그래봐야 10년 정도지만), 또 먼저 옛날 이야기를 재밌어라- 하시며 이야기하는 분도 아니니 작정하고 물어봐야 예전에 어땠구나 하는 걸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명절 때 전 부치면서, 송편 빚으면서 집안이 시끌벅적할 때 짬짬이 물어보며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지만, 이번 추석 때는 큰누나의 조카들이 집안 분위기를 평정해서인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나 오늘 잠깐이지만 이렇게 또 듣게 되었다.
오늘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우물 이야기와 극단 이야기.
먼저 우 물 이야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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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렸을 적엔 동네에 친척들이 모여살고 또 친척이 아니어도 모두 친척같은 살가움으로 대하며 살았단다. 집안의 경조사나 명절 때는 시끌벅적 온 동네가 사람 사는 것처럼 활기차게 준비를 하고, 서로 즐기고, 배풀고 했단다. 명절 때 떡을 찌면 동네 집집마다 한조각씩이라도 돌리고 서로 일도 도와가며 그렇게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았단다.
마을에 우물이 몇 개 없었는데, 그 우물물을 뜨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물이 부족하니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물을 아껴써야 한다"는 것이었고, 쌀을 초벌 씻은 물은 돼지 먹이와 함께 주고, 두번째 씻은 물은 두었다가 설겆이도 하고, 머리도 감고 했단다.
이렇게 사람은 많고 우물은 한정되어 있으니, 새벽 2-3시까지 안자고 기다려서 물을 떠서 마당에 묻어놓은 항아리에 붓고, 또 그렇게 항아리를 가득 채우면 부자 된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던 시절이란다.
그러던 마을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우물을 많이 뚫으면 마을이 흉흉해진다는 것이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물을 쓰게 되어 점점 우물이 말라가니 어쩔 수 없이 몇 개 있는 우물로는 모자라게 되서 집집마다 우물을 파서 자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각 집마다 우물을 파기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 마을의 풍요로움이 점점 사라져갔다고 기억하신단다. 미신은 이해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무언가 벌어지니 미신인 것이겠지.
몇 시간이고 순서를 기다려 함께 물을 마시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며 자연과 순응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 자신의 집에 우물을 두고 살면서 점점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상생과는 거리가 먼 생각들이 차츰 생겨난 게 아니었을까 하는 동화 속 이야기같은 생각이 들었다.
극단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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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살던 곳은 시골이었지만 극단이 종종 내려왔다고 한다. '여성극단'이라고 하셔서 "극단에 여자들만 있었느냐"고 물으니 거의 여성들만 있었다고 한다. 남자역을 맡은 배우도 여성이었고. 그들이 천막을 치고 몇일씩 공연을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서 구경을 했단다.
어머니도 보고 싶은 마음에 저녁 몰래 나가서 보고 들어오기도 하고, 집에 있는 쌀을 몰래 팔아 돈을 마련해 그 돈으로 공연을 보기도 했단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종종 이렇게 요즘말로 연극, 뮤지컬을 보고, 종종 공연하는 서커스단의 묘기도 보고, 또한 이런 것들이 없어도 마을의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서 노래자랑, 연극을 하며 모두 모여 흥겹게 즐겼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어울릴 때는 어머니도 열심히 대사를 외워 연극을 하셨단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이 "어느날 갑자기 그 작은 마을 근처에 극장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이 어울려 놀지 않게 되었다"고 하신다. 극장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방종해지고, 서로 어울려 놀지 않고 각자의 집에 있다가 극장에 가서 영화만 보고 들어오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역시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래,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시대가 변해가는 걸 감지했던 그 시기를 어머니는 그렇게 표현하셨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듣고나서 곰곰히 든 생각은 어머니가 젊은 시절을 살던 그 시절의 그 곳이 바로 동막골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의 인심이나 씀씀이, 사고방식과는 달랐던 시절의 그 곳. 비록 지금은 그 모습들이 사라졌지만.
재미있게도 오늘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꺼냈던 최초의 화제가 바로 '금자씨', '금순이', '동막골' 등의 요즘 드라마, 영화 이야기였기도 하고.
